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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교육 나를 '파더'라고 부르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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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미션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19-05-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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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적으로 나는 다시 걷게 되었다.



1983년 벚꽃이 흐드러지던 4월의 어느 밤,

종일 교회 홍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갑자기 ‘쿵’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하늘로 솟았다.  

만취 상태의 오토바이 운전자가 인도에 있던 내게 돌진한 것이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는 내게 다시 걷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내 나이 서른 둘, 아내는 둘째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바로 이런 기분일까.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

하나님, 

걷게만 해 주시다면 

어디라도 부르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발목 관절에 4개의 핀을 박아 고정하는 대수술을 했고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기적적으로 나는 다시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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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라이베리아... 


86년, 한 자매를 통해 라이베리아를 만났다.

저렴한 항생제가 없어서 병들어가는 사람들,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라이베리아로 향하기로 했다.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 

‘유별나게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도 들었지만, 

나는 부족한 종을 선교사로 택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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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에 교회를 지어주세요



1987년 2월 4일,

온 가족이 꼬박 3일을 걸려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라이베리아는 6.25전쟁 직후, 대한민국의 모습과 비슷했다. 



도착 후, 수중의 돈으로 구한 집은

바퀴벌레가 득시글거리고 벽은 곰팡이로 가득차 있었다. 

간단하게 집을 수리하고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오지마을에는 환자가 많았다. 

마을에는 갈 만한 병원도 약을 구할 약국도 없었다. 

우리는 마을을 돌며 굶주린 이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주고 말라리아나 상처에 시달리는 환자를 돌봤다. 

이러한 정성을 본 마을의 추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분을 위한 

교회를 세워준다면 

우리도 그분을 믿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직접 사역의 길을 열어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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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고집도 세다 



라이베리아 사역 3년째이던 1989년, 내전이 터졌다. 

반군은 통과하는 마을마다 주민을 무차별 학살하는가 하면 

재산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성폭행했다. 



이듬해 4월,

반군이 수도 인근 마을을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한국대사관과 한인들은 이 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떠날 수 없어

죽을 각오로 라이베리아에 남기로 결정하고 가족들을 비행기에 태웠다. 



아빠! 같이 가요! 



울며 매달리는 어린 딸의 모습에도 

라이베리아를 포기하지 못하는 내게, 

아내는 “당신, 정말 고집도 세다”며 울면서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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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파더’라고 부르는 아이들



내전에서 소년병들은 총알 받이로 희생되었고 반군들은 ‘총알이 피해가는 약’이라며 마약을 먹였다.

살아남은 소년병들은 구걸하며 노숙생활을 했다. 

'어린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게 구걸이나 총질밖에 없다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교센터 한 공간에서 ‘코리안 라이베리안 스쿨’을 시작했다. 

지붕도, 책상도 없었다. 벽에 검정색 페인트를 칠해 칠판으로 사용했다. 

아이들은 돌멩이를 가져와 쪼그려 앉아 공부했다. 

이렇게 공부해서 졸업한 아이들이 어느 덧 2000여명. 



가슴으로 낳은 이 아이들은 나를 ‘파더(아버지)’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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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도 라이베리아와 함께 울겠다. 



안식년으로 한국에 잠시 귀국했던 2014년, 

에볼라가 라이베리아를 강타했다. 

감염되면 눈 코 입 등 온몸의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10일안에 죽는 끔찍한 병. 



뉴스를 통해 현지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 나는 곧장 라이베리아로 떠날 채비를 했다.

‘고난 중에도 라이베리아와 함께 울겠다’는 그들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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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섭 선교사는 고백합니다.



교통사고를 

선교의 기회로 바꾸신 하나님께서는 

내전으로 상처 입은 땅에 

복음과 교육을 전해 

라이베리아 미래를 바꾸는 기회를 

허락해 주셨다 



이 영광스러운 선교사역에 여러분도 함께 동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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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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