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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_무엇이 문제인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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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미션 댓글 0건 조회 9회 작성일 26-06-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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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_무엇이 문제인가?(창 4:1-7)



2. 가인의 제사, 무엇이 문제였는가?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창 4:5上).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는가? 원문으로 들어가 보자.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렇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 예물을 받지 않으셨다.” 역시 사람이 먼저임을 알 수 있다. 제물보다는 사람이 먼저 나온다. 가인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 제물도 받지 않으시지 않겠는가? 여기에서도 “받으셨다”(שָׁעָה)라는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받으셨다”라는 말은 “응시하다”, “생각하다”, “자세히 보다”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받지 아니하신지라”는 말은 무슨 뜻이겠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인을 쳐다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가인을 쳐다보지도 않으신 하나님께서 그가 가져온 제물에 관심을 보이시며 기뻐하시겠는가?


  잠언 21장 27절에서 악인의 제물과 제사에 관한 이런 말씀을 볼 수 있다.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물론 가증한 제물도 있겠지만 악인이 드리는 제물이 어찌 열납되겠느냐는 말씀이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 4:7上).


  그러면 가인과 그리고 그 제물을 하나님께서 쳐다보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7절에서 그 이유를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선을 행하다”(יָטַב)라는 말은 “옳다”, “좋다”, “훌륭하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문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미완료 사역형이다. 미완료는 행동이 계속됨을 의미하고, 사역형은 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떤 말씀인가? 뜻을 살려서 번역하면 이런 말이다. “네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믿음의 바른 삶을 계속 살아왔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말씀이다. 즉, 가인이 자신을 쳐서 말씀에 복종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의 삶을 살아왔다면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 수 없었겠느냐는 말씀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고 책망하시는 말씀 속에 왜 가인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았는가를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낯을 들지 못하다”라는 말씀이 아주 중요하다. 원어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자적으로 보면 “낯을 들지 못하다”라는 말은 얼굴을 들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낯을 들지 못하다”에서 “들다”(שְׂאֵת)라는 말은 “들어올리다”, “인정되다”, “받아들이다”라는 단어인 “나사”(נָשָׂא)란 말에서 나왔다. 이 단어는 “높음”, “위엄”, “탁월”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낯을 들지 못하다”라는 말은 “인정되지 않다”, “받아들여지지 않다”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네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는 말을 원문으로 쉽게 풀어보면 이런 의미이다. “네가 믿음의 바른 삶을 계속 살아왔다면 어찌 너와 네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 가인의 제사가 하나님께 왜 열납되지 않았는가를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영어성경인 KJV나 NIV에서는 7절을 “네가 만약 바르게 행했다면 네가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If you do what is right, will you not be accepted?)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개역성경에서는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의역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이 곧 당당하게 얼굴을 드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어떤 것이었겠는가? 제물보다는 예배자의 믿음의 삶에 있었던 것이다.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이 예배자의 태도, 곧 삶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네가 믿음의 바른 삶을 계속 살아왔다면 어찌 너와 네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겠느냐”라고 말이다.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인의 신앙생활의 면면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가인의 일상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말이다. 그의 일상의 삶은 경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가인이 불신앙과 죄에 붙들린 삶을 살아왔던 것이 창세기 4장 7절 하반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고에서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에덴동산의 아담과 같이 가인도 그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여전히 죄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선을 행할 것인가’ 말이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고 경고하셨다.


  여기서 “죄가 엎드리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엎드리다”(רָבַץ)라는 말은 “쭈그리다”, “잠복하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먹이를 낚아채기 위하여 맹수가 자세를 낮추고 웅크리는 모습이다. 이같이 죄가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엎드리다”라는 말이 분사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경고하신 것이다. 직역하면 이렇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다.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의 소원이 가인에게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소원”(תְּשׁוּקָה)이란 “욕망”, “갈망”, “소망”을 말한다. 죄의 욕망이 가인을 둘러싸고 붙잡으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담으로부터 들어온 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의 권세 아래 놓여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죄가 계속하여 가인을 다스리려는 영적 전투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죄와의 영적 전투의 현실을 인식하고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본문의 “다스리라”(מָשַׁל)는 말은 “통치하다”, “지배권을 행사하다”라는 말이다. 죄에 대해 끊임없이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다스리다”는 말이 미완료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죄가 아담을 통해 들어온 이후 모든 인간에게는 죄의 욕망이 있다. 아니 이 죄의 욕망에 붙들려 있다. 이 죄의 욕망을 다스리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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