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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과 그가 누리는 행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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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미션 댓글 0건 조회 23회 작성일 26-07-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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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과 그가 누리는 행복 (시 1:1-6)



[원문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

1. 주 안에서 사는 행복한 사람이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복 있는 사람”이란 말씀에 대한 번역이 다양하다. “복”(אֶשֶׁר)을 감탄사로 보면 이렇다.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그리고 “복”을 “사람”과 묶은 형태로 보면 “그 사람의 복”이라고 볼 수 있다. 영어 번역본(KJV, NASB, NIV)에서는 “복”을 감탄사로 보고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How blessed is the man)로 번역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악인의 꾀를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꾀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꾀”(עֵצָה)란 “충고하다”, “협의하다”, “조언을 받다”, “권하다”, “고안하다”라는 의미의 “야아쯔”(יָעַץ)에서 나온 말이다. 꾀란 “모사”, “계획”, “충고”라는 뜻이다. 악인의 꾀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의 달콤한 유혹을 말한다. 그 끝은 멸망이요, 파탄이다. 그러므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악한 자들과 어울려 그들의 생각이나 모략들이나 조언을 따라가지 않는 것을 말한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이다. 죄인의 길이란 무엇인가? 죄인이란 “벗어나다”, “빗나가다”라는 뜻의 “하타”(חָטָא)란 말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죄인의 길이란 하나님의 길에서, 하나님의 법에서 떠난 자들의 삶을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이런 악한 삶에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서다”(עָמַד)라는 말은 “지속하다”, “머무르다”, “고수하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사는 삶의 길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기 빠져서 동화되어 살지 않는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자다. 여기서 “오만하다”라는 말은 “업신여기다”, “입을 삐죽거리다”, “거만하게 말하다”라는 뜻이다. 시편 73장 11절을 보면 오만한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만한 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조롱한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조롱한다. 무례하기 짝이 없다. 이사야 14장 14절을 보면 하늘을 찌르는 사탄의 교만을 볼 수 있다.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이렇게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조롱하거나 대적하는 자리에 앉지 않는 자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편 1편 1절에는 세 동사가 나온다. “따르지 아니하며”, “서지 아니하며”,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모두가 완료형이다. 완료형은 시작된 행동이 지금까지 계속된 것을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였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참으로 행복한 사람에 대해 2절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율법(תּוֹרָה)이란 무엇인가? 이 율법이란 말은 “지시”, “훈계”를 의미한다. 율법이란 “화살을 쏘다”, “가리키다”, “교훈하다”, “겨누다”라는 의미의 “야라”(יָרָה 대하 26:15)에서 나왔다. 즉, 방향을 모르는 자들에게 방향을 지시해 주거나 그릇 행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규범을 교훈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로 인해 방향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 이르는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준다. 율법이란 생명에 이르는 길인 셈이다. 


   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즐거워하다”(חֵפֶץ)라는 말은 “소원”, “기쁨”을 말한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를 직역하면 “오직 그의 기쁨이 여호와의 율법에 있다”라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르는 바른 방향, 삶의 바른 방향을 지시하고 교훈해 주는 이 율법을 생명으로 여기고, 마음에 두며 기뻐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는다.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명의 기쁨으로 여기고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준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그 아주 중요한 점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시작은 죄사함과 의로움에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만족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세상은 죄 사함도 의로움도 모른다. 관심도 없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데 있다. 


   그리고 1-2절에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진리가 있다. 복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만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결같이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이란 사실이다. 즉, 행동하는 신앙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씀을 보면 복된 길, 복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셨어도 그 복의 선물을 누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행복의 선물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거룩한 길로 행하는 자에게 3절에서 이렇게 은총을 약속하고 계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면서 악한 길에 다니지 않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심다”라는 말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여기에서 “심다”(שָׁתַל)라는 말은 “심다”, “옮겨 심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수동태로 “되어있다”(שָׁתוּל)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뜻을 생각해 보면 ‘시냇가에 옮겨 심은 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나무 스스로 시냇가에 옮겨 갈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나무를 시냇가로 옮겨 심은 것인가? 하나님께서 물가로 옮겨 심은 것이다. 시냇가는 어디를 말하는가? 은총의 자리가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 복 있는 사람을 친히 죄악의 척박한 광야 같은 삶에서 은총의 자리로 옮겨 심어 놓으신다는 말씀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절을 따라 과실을 맺는다. 또한 시냇가에 옮겨 심겼기 때문에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 여기서 “형통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형통하다”(צָלַח)는 “돌진하다”, “전진하다”, “번영하다”, “번성하다”라는 의미이다.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도, 형통하다는 말도 모두 미완료형이다. 잎사귀가 계속 마르지 아니하며 그의 형통이 계속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형통하다는 것은 그의 앞길에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제거하셔서 계속하여 탄탄대로를 만드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형통의 은총을 혼자만 누리게 하지 않으신다. 여호수아 1장 8절을 보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킴으로 누리는 형통함을 곧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누리지 않았는가?


   요셉의 형통함도 마찬가지다. 요셉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 형통한 자가 되었다(창 39:2). 그런데 이 노예 요셉의 형통함은 곧 그와 함께하는 보대발의 집에도 함께 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형통함을 함께 누리지 않았는가? 하늘의 은총을 받아 형통함을 누리는 자들은 또한 복의 통로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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